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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타들어가니 눈물이 난다.
발길 닿았던 산이, 눈에 담았던 산이, 그도 아니면 언젠가 하고 마음에 두었던 산들이 타들어간다. 숭례문이 타들어갈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다. 이 정도로 애가 닳진 않았는데. 산청 산불 진화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과 집이 타들어가는 걸 멀리서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눈시울에 시선이 머물더니 나도 기어이 눈물이 났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지리산이라 그런가. 땅 위를 힘차게 내지르던 혈맥이 새카맣게 재만 남아 도드라진 모습이 괴롭다. 언젠가 산불이 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는 아버지는 그 때의 두려움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커다란 덤불같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산 하나를 훌쩍 넘어가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불씨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두 발 달린 생물같다고.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걸 꼭 ..
2025.03.26 -
세계 시의 날을 기념하며 / 김수영 / 봄밤
그거 알아?매년 3월 21일은 세계 시의 날이래유네스코가 지정했다는 이 아름다운 날을 기념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난 지금, ’프랑스는 우리보다 시간이 느리니까 아직 21일 일지도 몰라‘하고 찾아보니 프랑스도 이미 22일이다… 왜 하필 프랑스냐면 유네스코 본부가 파리에 있으니깐🙄아몰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세계 시의 날은 핑계고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이곳에서 나눠야지.김수영 / 봄밤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오오 봄이여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너는 결코..
2025.03.22 -
수월봉 지질트레일 트래킹 (2025.01.21.) / 우연히 만난 행운의 돌고래 떼
해변따라 이어진카페 모카 크레이프 케이크 수월봉지질트레일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760place.map.kakao.com 과감하게 공간을 디자인한 카페, 블랙이쉬 레드(Blackish Red) / 저녁 산책내리기도 전에 스포 당함없다. 한라산 꼭대기만 하얗고 다 녹았다. 한라산 설경 보려면 이렇게 미리 예매할 게 아니라 일기예보 쭉 지켜 보다가 전날 짐싸서 훌쩍 떠나야 했구나. 어쩐지 새벽부frame-of-mind.tistory.com카페에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수월봉 지질트레일을 찾았다. 네비에 '수월봉지질트레일'이라고 검색하면 사진 속 장소인 수월봉전망대로 안내해 준다. 이곳에서 바로 트래킹을 시작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고, 조금 걸어내려 가서 해변으로 합류해야 한다. 수월..
2025.02.14 -
과감하게 공간을 디자인한 카페, 블랙이쉬 레드(Blackish Red) / 저녁 산책
내리기도 전에 스포 당함없다. 한라산 꼭대기만 하얗고 다 녹았다. 한라산 설경 보려면 이렇게 미리 예매할 게 아니라 일기예보 쭉 지켜 보다가 전날 짐싸서 훌쩍 떠나야 했구나. 어쩐지 새벽부터 순탄치 않더라니, 이러려고 그랬나 봄. (아님)늘 이중 주차를 피해왔건만 이 날따라 깜박했고, 어쩔 수 없이 이른 새벽에 부른 콜택시 기사님은 캐리어를 트렁크가 아닌 뒷자리에 실었다. 왜지. 어쩔 수 없이 앞자리에 타서 공항리무진을 타러 가는 동안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아저씨는 내가 이야기를 곧잘 받아내자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이상하고 역한 말들을 쏟아 냈다. 하 정말,,, 당장 문을 열고 내리고 싶었지만 비행기는 타야 하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2025.02.13 -
눈 내린 날 자동 세차하러 가는 일상
뭐라고요?눈이 온다고요? 친구가 오늘 아침에 눈소식을 전해줬다. 그동안 눈을 너무 갈구하고 다녔다 봄. 창밖을 보니 진짜 눈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이곳 남쪽나라에도 드디어 눈이 내렸습니다 여러분. 세 시간 뒤 어김없이 햇빛이 비치면서 사라졌지만, 오늘의 기쁜 마음을 기록하는 의미로 그간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도 함께 모아모아 정리해 본다. 2009년식 23만킬로를 달린 내 첫 자동차의 수출. 얼마전 사성암과 노고단을 다녀오면서 이제 이 차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외국일 줄은 몰랐지. 헤어지기 전에 깨끗하게 씻어서 보내주려고 칼바람을 뚫고 세차장에 다녀왔다. 신차를 구입하는 곳에서는 맡기면 수출 처리와 함께 15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예전 카센터에서 만난 분이 혹시 폐차할 거..
2025.02.07 -
드디어 봤다, 서브스턴스 / 듣도 보도 못한 바디 호러
더 나은 자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서브스턴스 메인 예고편">■ 제작진 코랄리 파르자■ 출연진 데미 무어(엘리자베스), 마가렛 퀄리(수), 데니스 퀘이드(하비)■ 영화 줄거리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
2025.02.03 -
녹진한 쌀엿이 쏘아 올린 로드트립 / 운전 기사 M의 하루
그거 맛있었는데어릴 때 냉동실에 있던 하얀 쌀엿. 이에 달라붙지도 않고, 생강향이 은은하게 나는 게 참 맛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이야기 꺼냈다가 창평 갈까? 쌀엿사고 국밥 먹고 오자! 그렇게 졸지에 운전석에 앉은 나😳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왔다 창평. 쌀엿은 공기를 만나면 눅눅해지기 때문에 냉장보관 중. 임금님 상에 진상하던 그런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매장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사진 속 영양바랑 강정바도 엄청 꼬숩고 맛있음. 구정 앞두고 선물세트도 종류별로 많았다. 몇 년 전 약과 열풍 잊을 수 없어. 저기 위에 놓인 식품들이 모두 시식용이다. 매장 바로 옆에는 제품을 만드는 작업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상품이 깨지거나 포장에 불량이 생긴 경우 바로바로 파지 상품으로 분류하는 ..
2025.02.02 -
지리산 노고단 산행 (2025.01.01.)
나도 눈 주세오새해의 첫날은 지리산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얀 눈을 잔뜩 보려고. 어제처럼 전국이 대설특보에 눈사태일 때도 해가 쨍쨍한 남쪽나라😶🌫️ 사성암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았다. 조식 먹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들렸다. 어제 천은사 통제했다더라, 오늘은 가봐야 안다, 하는 이야기였다. 왁 안돼요 저 오늘 노고단 가야 해요. 서둘러 성삼재 휴게소로 향했다. 해발고도 1100m성삼재 휴게소에서 출발성삼재 휴게소는 해발고도 1100m. 조금은 무모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천은사에선 통제가 없었고 시암재 휴게소는 도로 한편을 막아 놓고 있었는데 앞서 가는 차들이 멈추지 않고 오르기에 나도 용기를 내서 밟았다. 주차장은 유료다. 중..
2025.01.28 -
구례 여행 / 오산 사성암 / 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홍수를 피해 소들이 쉬었다 간 곳 [포착] 축사 탈출한 소떼, 해발 531m 절로 달려갔다섬진강 홍수를 피해 해발 531m의 사성암까지 피난 간 소 떼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8일 오후 1시쯤 전남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에 소 10여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소들은 대웅전 앞마당에 모v.daum.net몇 년 전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소들이 절 앞마당에서 풀을 뜯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주인이 데려가기 전까지 조용히 쉬었다 갔다는 것이 하도 신기하고 웃음이 나 절 이름을 기억해 뒀었는데. 이번에 노고단 산행을 계획하고 보니 근처였다. 역시 살다 보면 언젠가는 갈 일이 생긴다. 마을버스 매표소에 아무도 안 계시길래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그냥 올라와도 된다고. 주차장이 한산한 모양이다. 역시..
2025.01.27 -
오늘책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처음부터 다시 써진짜 작별 인사를, 제대로 큰 일을 겪고 시들어가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하라'라고 하는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눈앞의 사람이 속상해 내던지는 안타까움이거나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인데 하물며, 하는 원망이거나. 하지만 속에 있는 그것을 원 없이 게워내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다.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주인공 경하는 생을 마감하려는지 써둔 유서를 다시 꺼내 여러 번 고쳐 쓴다. 제대로 작별하기 위해. 하지만 자신을 수습할 누군가를 염려하며 주변을 정리하다가 두 달 만에 집 밖으로 나선다. 그 길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뜨거운 잣죽을 사다가 천천히 오래도록 먹는다. 그렇게 죽음이 비껴간다. 기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해두자. 인선 역시 천상 기록하는 사람..
202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