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타들어가니 눈물이 난다.
2025. 3. 26. 18:41ㆍ랭보의 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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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았던 산이, 눈에 담았던 산이, 그도 아니면 언젠가 하고 마음에 두었던 산들이 타들어간다. 숭례문이 타들어갈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다. 이 정도로 애가 닳진 않았는데.
산청 산불 진화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과 집이 타들어가는 걸 멀리서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눈시울에 시선이 머물더니 나도 기어이 눈물이 났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지리산이라 그런가. 땅 위를 힘차게 내지르던 혈맥이 새카맣게 재만 남아 도드라진 모습이 괴롭다.
언젠가 산불이 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는 아버지는 그 때의 두려움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커다란 덤불같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산 하나를 훌쩍 넘어가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불씨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두 발 달린 생물같다고.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걸 꼭 부수는 사람이 있다. 횡단보도로 잘 건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중앙 분리대를 망가뜨리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요즘의 사건들이 꼭 그런 것 같다. 아니, 세상이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묘목을 나누고 심는다. 땅은 정직해서 기다리면 싹을 틔운다. 어리석음에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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