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0. 16:41ㆍ랭보의 낭보
며칠 전 겨울 산행에 필요한 등산 바지를 보러 매장에 들렀다. 생활 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소재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두 번째 매장에서 원하는 기능에 합리적인 가격의 바지를 찾았다. 입어보니 디자인도 튀지 않아서 여기저기 갖춰 입기 좋을 것 같았다. 드레스룸에서 갈아입는데 바깥에서 사장님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회사에서 가시는 거예요?
아뇨, 혼자서
에이 혼자가면 재미가 있나,
같이 가야 이야기도 하고 좋지.
정작 나는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두 사람이 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결국 사려던 마음을 접고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혼자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약속이나 한 듯 따라붙는 말들이다. 참 신기한 건 반대로, 왜 그렇게 의존적이에요?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해요?라고 묻는 사람은 만나본 적은 없다는 것.
함께 하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부터 함께 계획한 여행이 취소됐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느 날 문득 떠나고는 싶은데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여행을 접는 건 내 입장에서는 이상한 일이다.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언제든 떠나는 것이다.
이번엔 식사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배가 고파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면, 제 때 끼니와 건강을 챙기고 싶은 사람은 혼자라도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할 것이고, 혼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거나 스스로 못 견디는 사람은 때를 놓치더라도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에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각자 자신을 위하는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나는 혼자 밥도 잘 먹고, 등산도 하고, 영화관이나 전시회는 물론이고 여행도 잘 다닌다. 그렇다고 혼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는 왜 혼자 다닐 용기가 없느냐고 물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혼자 잘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유난히도 따져 묻는다. 왜 혼자인지, 심심하진 않은지, 외롭지는 않은지, 위험하진 않은지. 심심할 수 있고요, 외롭기도 하겠죠, 그리고 위험하면 가지 않습니다.
다수는 소수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소수는 언제나 대변해야 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관두려고. 이해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다른 이야기를 하면 된다. 얕고 느슨한 이야기들로 채워도 충분하다. 우호적 무관심이란 게 이런 것 아닐까. 사회적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내버려두는 것.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우리 그냥 좀 편하게 살자.
'랭보의 낭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를 산다. (6) | 2024.12.31 |
---|---|
작은 다정이 모이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9) | 2024.11.18 |
감정에 솔직한 사람에게는 늘 속수무책이다. (1) | 2024.11.12 |
헤어졌다. (8) | 2024.11.10 |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다. (0)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