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책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2025. 1. 25. 07:04와유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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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 인사를, 제대로

 

큰 일을 겪고 시들어가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하라'라고 하는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눈앞의 사람이 속상해 내던지는 안타까움이거나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인데 하물며, 하는 원망이거나. 하지만 속에 있는 그것을 원 없이 게워내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다.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주인공 경하는 생을 마감하려는지 써둔 유서를 다시 꺼내 여러 번 고쳐 쓴다. 제대로 작별하기 위해. 하지만 자신을 수습할 누군가를 염려하며 주변을 정리하다가 두 달 만에 집 밖으로 나선다. 그 길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뜨거운 잣죽을 사다가 천천히 오래도록 먹는다. 그렇게 죽음이 비껴간다. 기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해두자.
 
 
 

인선 역시 천상 기록하는 사람이다. 3분마다 손끝을 찔러대는 인선의 설정은 지난 과거를 구전하는 사람의 아픔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직계 혹은 방계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행운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자주 유리하기 위해 혹은 불리하기 싫어 혐오의 씨앗을 심는지. 남녀를, 노소를 갈라놓는 정치적 장치와 여론 몰이에 놀아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속솜허라

 

4.3 사건은 혐오에 뿌리를 둔 명백한 학살이었다. 자그마치 7년 7개월 동안 15,000여 명이 넘는 제주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 시작이 그저 오해라면 누가 믿을까. 폭도라고, 빨갱이라고 몰아가 중산간 마을에 모여 살던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죽이고, 죽음을 피해 한라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을 사면한다며 회유해 또 죽였다. 그런데 사면이라니? 지은 죄가 있어야 형벌이 있을 텐데, 형별이 있어야 사면이란 것을 할 텐데. 죽은 제주 사람들은 아무런 죄가 없었다. 일본을 견디고 미소군정을 견뎌냈더니 이번엔 자신들을 빨갱이라 몰아가는 군부가 있었던 거다. 속솜허라, 동굴마다 웅크리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그렇게 조용히 시켰다. 
 

 
 
 

책에서 반복해 그려지는 이미지는 온통 하얀 눈이다. 경하가 꾸는 꿈, 인선의 공방을 찾아가는 모든 여정, 아마를 묻어 주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환영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종장에 이르기까지 눈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눈 결정은 작고도 성글어서 그 속으로 소리를 가두어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군부가 끝나고도 그 일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제주 사람들이 속으로 삼켜야 했던 것이 꼭 눈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서 다시 첫장을 펼치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은 나무들이 마치 그 시절 제주 사람들의 모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서늘해진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와닿는다. 
 
 
 

책을 읽으면 늘 한 가지 이상의 역사적 사건을 만난다. 그는 나를 건드리고, 바라보다가 흘러간다. 저마다의 사건들은 시간을 맞물어 겹치고 하나의 띠를 만들어 마침내 시대가 된다. 아무리 외우려 노력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던 역사였는데. 이미 일어난 일은 늘 그곳에 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기록한다. 덕분에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 속으로… 제주 4·3 유적지를 만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소설가 한강의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이 된 제주 4·3 사건 관련 관광 프로그램이 조만간 마련된다. 제주도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인 중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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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속 제주 바다·동굴·마을…평화여행 5곳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인 제주 4·3의 길을 따라 걷는 ‘4·3 유적지 기행’은 이제 보편적인 제주의 평화기행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4·3 시기인 4월에는 유적지 기행에 나서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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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의 작업실이 있는 p읍은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 마을 세천리는 지금의 가시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선이 버스를 타고 나가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던 바다, 마을 사람들이 총상을 당하고 다음날이면 깨끗이 씻겨 나가 흔적도 남지 않았다던 그 해변은 지금의 표선해수욕장이다.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10여 년 전 내게도 4.3 사건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영화관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만났다. 이제라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알고 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이 책은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만났다. 생일을 앞두고 집에 들렀다가 엄마에게 물물교환을 제안받은 것이다.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상 탔잖아
그래서 사서 읽어봤어
너한텐 무슨 책 있어?
 

 "채식주의자랑 소년이 온다" 

 
거봐, 너한테 있을 줄 알아서 그건 안 샀어
이거 줄 테니까 다음에 올 때 그 책들 꼭 챙겨 와
 
 

성공적인 물물교환이었다

자주 깜박하는 탓에 엄마는 몇 번이고 내게 책 가져오는 거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드디어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날. 병렬 독서를 하는 와중에 자꾸만 책이 더 생겨서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책 두 권을 건네고 받은 건 또 다른 책 두 권과 김장 김치, 팥죽, 사과, 곶감. 이 정도면 꽤 쏠쏠한 거래다. 며칠 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영화 하얼빈을 보러 간다며 자랑을 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뭔지 너무 잘 알아서 부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질 수 없어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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