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개봉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작은 친절이 만든 큰 변화

2024. 12. 12. 01:00와유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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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사소하지 않은 결심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일 때의 즐거움이란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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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인 킬리언 머피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아일랜드 사회의 뼈대 같은 것"

 "다행히도 나와 내 직계가족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영향을 받은 사람을 하나둘 알고 있다"

"소름 끼치고 무서운 점은 막달레나 수녀원이 1996년에야 문을 닫았다"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좀 더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대면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마침내 그 문제를 들여다보길 바란다"

지난주 완독한 클레어 키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오늘 개봉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된 바 있으며 조연인 에밀리 왓슨은 이 영화를 통해 은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소설 속 묘사된 장면들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던터라 며칠 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극장에 다녀왔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상영일정 : 네이버 검색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상영일정'의 네이버 검색 결과입니다.

search.naver.com

다음에도 영화 예매 통합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티스토리 유저로써는 꽤 아쉬운 점. 어쩔 수 없이 네이버 예매창을 가져왔다.
 
 
 
 

내게 강같은 리좀

 

 

이번 영화도 리좀에서 관람했다. 위 사진에 상영시간표 링크를 걸어두었다. 메박, CGV는 경상도 지역에 아예 상영관이 없고 그나마 롯시 하나 있는 건 합성동과 통영인데 시간대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다. 상업 영화 아니면 안 거는 극장들 반성해라 반성!!! 리좀 없었으면 난 어디서 영화를 봐야했을까? 

 
 
 


 

우선 영화 속 설정과 영화가 다른 점은 두 가지이다. 물론 영화를 감상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 원작에서 펄롱의 어머니는 이름이 없지만 영화에서는 세라로 나오며, 이는 펄롱이 구해내는 소녀와 같은 이름이다.
  • 원작에서 수녀원에 갇힌 소녀 세라는 이미 아이를 출산한 후 빼앗긴 설정이지만 영화에서는 임신 중으로 나온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이런 회색빛 톤이 유지된다. 밝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전구나 성가대가 합창하는 장면에서도 예외는 없다. 큰 기념일을 앞두고 묘하게 들뜬 마을이지만 오랜 기간 외면하고 묵인했던 그 일이 덮일 리 없기 때문에.
 
 
 

펄롱은 언제나 어딘가 불편하고 불행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아픔이었던 걸까? 자신이 받았던 어릴 적 구원의 손길을 나름대로 베풀며 살지만 아내를 비롯한 친한 사람들은 그것을 염려한다. 
 
 

 

밤낮으로 마을 곳곳에 땔감을 배달하며 바쁘게 지내는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서도 종종 그 장면들은 펄롱을 따라다닌다.

 
 


 

엄마, 여기 안 갈래요 제발

펄롱이 세라를 처음 만난 날, 세라의 부모는 수녀원에 자신의 딸을 맡기고 가버린다. 그 시절 아일랜드에서는 소위 방탕함을 교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여자들을 수녀원에 감금해 휴일 없이, 임금 없이 노역을 살게 했다고 한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다해도 여성에게 그것은 곧 방탕함이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농장 일꾼과 저택 주인, 식당 주인조차도 이름이 있지만 어쩐지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수녀원에 감금된 세라와 같은 이름으로 나오는데 재미있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보니까 친척인 거 알겠네요
닮았어요
네드가 삼촌인가요?

어린 시절 펄롱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농장 일꾼 네드. 소설 속에서는 네드가 펄롱의 아버지 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나온다. 펄롱은 평생을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해했지만 마흔이 다 되어서야 어렴풋이 깨닫고는 많이 혼란스러워한다. 

 
 


 

네 나이에 숨바꼭질이라니
놀이가 끝난 다음에
널 꺼내줄 생각은 안 했다니?

석탄 창고에 갇힌 세라를 두 번이나 발견하고는 기어코 빼내고야 마는 펄롱.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녀원장은 세라와 펄롱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걱정을 한다. (야 너네가 가뒀잖아!) 잔잔하기만 하던 영화에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장면이다. 에밀리 왓슨 은곰상 받을만 했네

 
 
 

펄롱을 회유하기 위해 딸 아이들과 아내 아일린을 언급하며 넌지시 압박을 가하는 메리 수녀, 나 저런 사람 알아, 많이 봤어... 저 봉투를 받은 아일린은 크리스마스를 지내기에 충분한 금액이라며 수녀원장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펄롱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 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 거야

 

그리고 펄롱을 위하는 또 다른 인물, 케호 부인. 펄롱을 비롯한 일꾼들이 삼종기도 시간마다 들러 끼니를 해결하는 케호 식당의 주인으로 내가 상상하던 모습은 조금 더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따뜻함은 더한 듯했다. 펄롱이 수녀원장과 대립한 일을 알게 된 후 펄롱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펄롱의 아내 아일린. 소설 속에서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펄롱이 수녀원에서 목격한 일을 언급하며 괴로워할 때도 우리 딸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은 늘 있기 마련이라고 일갈한다. 꽤 냉정한 인물로 상상했지만 영화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편을 다독이는 듯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소설 속에서도 영화에서도 꽤나 사이 좋은 부부다. 무던한 펄롱과 생활력 강한 아일린이 오랜 시간 동안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며, 다섯 딸을 데리고 마을에서 단단히 뿌리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영화 막바지에 펄롱이 구출해 낸 세라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딸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 이후를 상상해보자면 며칠 간은 울부 짖으며 가족은 펄롱을 원망하겠지만 결국 살아갈 것이다. 수녀원장이 앙심을 품어 가톨릭 산하 학교에 딸들이 진학하지 못한다해도, 큰 딸 캐슬린의 대학 입시에 불똥이 튄다 해도 이 가족은 방법을 찾을 것 같다.
 
 
 

펄롱의 우직함과 아일린의 냉철함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펄롱이 베풀었던 선의들이 그렇게 이 가족을 이끌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견고했던 악습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것이다.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결심이었다.

 
 
 


 
 
 

영화 속에서 자주 나오던 장면이다. 펄롱이 손을 씻을 때마다 매일 조금씩 지은 죄도 어쩐지 함께 씻어 나가는 듯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여러분은 떠오르는 집단이 있는가? 자신의 안위에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들 알지만 쉬쉬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그런 조직이 나는 떠오른다. 그래서 매우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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