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2024. 12. 5. 18:41와유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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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산책 / 진해 내수면 생태공원 / 팥이야기 / 주책방

진해 내수면 생태공원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을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우리는 얼레벌레 드라이브를 나섰다. 여좌천에 몇 번을 와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는데, 세상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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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요며칠 시국이 하 수상하여 독서로 불안함을 달랬더니 금방이다. 얼마 전 주책방에서 고른 책들 중 가장 먼저 손이 간 책. 곧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랬나?

 


 
 

내 많은 작업은
나의 노동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

클레어 키건 | 영미작가 - 교보문고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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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은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 주에서 태어나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영국 신문사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작가가 25년간 활동하면서 단 5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이지만 자국에서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고.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싶어 찾아보니 작년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작가였구나.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

표지 그림 / 피터르 브뤼헐 / 눈 속의 사냥꾼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세상에는 누군가 말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키건은 그것을 해낸 사람 중 한 명이다. 책 속 주인공은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에서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을 내적 갈등을 겪는다. 

 


  

힘들게 자라 자수성가한 주인공 펄롱은 삶이 평탄한 궤도에 올랐지만 조금의 여유도 누리질 못한다. 별 일 없는 일상에서 뭔가 답답함을 느끼며 자주 다른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왜 한번쯤은 다들 겪어 봤을 거다. 뭔가 마음에 턱하고 돌덩이가 얹혀져 있는 듯한 기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그런 기분. 포스트잇을 붙일 때는 단순히 문장에 공감했던 건데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암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나날과 기회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도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하는 선택은 큰 결심이 필요할 테고. 평온한 일상에 안주해도 되지만 곳곳에서 펄롱은 망설이고 되돌아본다.

 
 

 

이건 그냥 문장이 공감되어서 표시한 부분. 매일 시간이 느리다는 걸 느끼는 순간들이 있지만, 1년을 놓고 보면? 그러게.. 시간은 언제나 느려지질 않는다. 
 
 

 

머지막의 마지막까지도 펄롱은 줄곧 불편함을 느낀다. 죄책감이라기보다 무료함에 가까운 그 불편함이 곧 큰 결심을 이끌어내는 데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신발 속 모래처럼 내내 펄롱을 괴롭히던 그 감정은 수녀원에서 학대받던 세라를 구한 뒤로 말끔하게 사라진다. 한밤중 수녀원으로 가는 동안 펄롱은 여러 번 망설이지만, 결국 소녀를 구하고 불안했던 마음은 이내 충만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작은 다정이 모이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사람이 다정해지려고 마음먹는 건어떤 순간일까? 오늘도 다정한 사람을 만났다.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들러 먼저 손을 씻으려 화장실로 향했다. 비누 디스펜서가 말을 듣지 않길래 손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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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기와 선택이 펄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는 책 속 묘사에서도 알 수 있다. 펄롱을 보고 반가워하던 이웃들은 세라의 맨발을 보고 뒷걸음질 치거나 거리를 두며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어떻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어. 펄롱의 다정은 세라의 세상을 구했다. 
 
 

 

작품의 가장 첫 문단을 작가는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으니 번역에도 그것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 두고 묘하게 들뜬 마을의 모습과 언덕 위 막달레나 세탁소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책 마지막에 이 작품은 많은 암시가 담겨있고, 작가도 그렇게 번역되길 바랐다는 번역가의 말이 나온다. 책장을 덮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해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명하지 않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엔다 케니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득 우리나라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신안 염전노예(현재 진행형) 사건이 함께 떠올랐다. 기록하지 않으면 인류는 오독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저자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킬리언 머피는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으며 현재 모든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캐스팅을 보니 책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와 심리적으로 대척하는 막달레나 수녀원의 원장이 책에서보다 비중이 커 질 것으로 예상해본다. 킬리언 머피와 함께 맷 데이먼 제작에 참여했구나. (개인적으로 맷 데이먼의 행보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은 선함을 가지고 있다. 막연하게 희망 회로를 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럴 여유만 있다면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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