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6. 16:08ㆍ요즘의 녹음
합천 정양늪 생태공원
요즘은 그냥 훌쩍훌쩍 떠난다. 이 날도 별다른 계획 없이 그냥 나섰다.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저런 근황을 나누다가 갑자기 합천갈까? 그래, 가자! 해서 정양늪 생태공원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로 늪을 매우 좋아한다. 늪에 가면 각자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생물들이 다양하다. 아침은 고요하고 저녁은 잠잠해서 그곳에 가면 내 모든 시름들이 같이 물 속에 잠길 것만 같다. 흙속에 덮어 두고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우포늪이 그렇고, 재약산이 그랬다. 힘들 때마다 가까운 우포늪을 찾고, 등산을 가서도 늪지를 찾는 것은 이제 일종의 의식같은 것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노란 은행잎이 투명하게 빛났다. 눈부신 가을날 풍경. 도톰하게 입고 간 플리스 점퍼가 성가셔 져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는 신나게 걸었다. 정양늪은 우포늪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여서 잰 걸음으로 한바퀴 걸으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산책로 초입에 보이던 흰뺨검둥오리 떼들. 물 위에 동동 떠서 노니는 모습에 내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겨울에는 주로 논에 떨어진 벼 이삭이나 얕은 물에서 수초를 먹는다고 한다.
귀여운 건 가까이서 한 번 더. 먹이를 먹기 위해 머리를 담르면 자연스레 엉덩이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면 다른 철새들도 이곳으로 이동해 오겠지.
우연히 발견한 붉은귀거북. 헤엄치는 모습이 귀여워서 얼른 찍었는데 알고보니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한다. 친구가 시골에서는 저 거북이가 보이면 바로 없앤다고 이야기하자마자 물 속으로 쪼르르 달아나버렸다. 들렸니? 핑크 뮬리도 너도 왜 귀엽고 이쁜 아이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거야?
오랜만에 외출이라 신나서 시계방향으로 크게 한바퀴 돌려고 했더니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있었다. 전 날 비가 와서 그렇구나. 그대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반대편 생명길로 오니 세상에 오길 잘했다. 가지런히 심겨진 메타세콰이어가 물들고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호들갑을 떨고 친구는 잠자코 들어주는 편인데, 그렇게 조용한 친구가 호들갑을 떨 때에는 같이 신나서 호들갑이 배가 된다.
합천 한옥카페 <스밀다>
역시나 아무 것도 모르고 도착한 카페. 머무를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역 내에서 꽤 사랑받고 있는 카페인 듯하다. 남해의 앵강마켓도 지역민들과 상생하며 성장하는 곳이었으니까 이 곳도 그리 되어 오래오래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쌀라떼가 너무 맛있거든요. 되게 깔끔한 미숫가루에 샷츄가한 맛인데, 뻔하지는 않고 꽤 묵직하다. 쌀휘낭시에도 너무너무 맛있거든요. 쌀가루와 아몬드 가루를 이용해서 만든 빵이어서 마음 놓고 하나씩 냠냠. 함께 주문한 핑크슈페너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가보는 카페에 가면 대체로 시그니처 메뉴를 도전해보는 편인데 이번 도전 성공.
한옥카페여서 내부도 고즈넉한데 오후의 빛까지 스며들어오니 분위기가 정말 따뜻했다. 언젠가 혼자 가서 구석에서 조용히 책만 읽다 와도 좋을 듯. 물론 손님이 상대적으로 적은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실내 뿐 아니라 정원에 있는 좌석들도 참 이쁘다. 이날도 야외 테이블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니 근데 카페 곳곳에 새겨진 스밀다 로고만 찾아도 반나절은 훌쩍 갈 듯 ㅋㅋㅋ ㅋ 사장님 카페 정말 사랑하시나보다. 존재감이 굉장해. 어떤 영역표시 같은 걸까. 반경 100m 내외 카페 최강자는 나다, 이런 거...
카운터 옆 음악이 흐르던 스피커. 모양이 이뻐서 다가가 자세히 보니 버튼이랑 다이얼도 있는 걸 보니 꽤 레트로한 디자인이다. 이쁜데 음질까지 좋구나. 너는 생태계 교란종 아니지?
카페에서 나와 찍은 포스터. 계절마다 디자인이 바뀌는 듯하다. 잘 놀다 갑니다.
다음엔 어디 가지?
나만 보기 아까운 귀여운 오리떼들, 저 궁둥이를 보세요
호다닥 사라지는 붉은 귀 거북이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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