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4. 13:21ㆍ랭보의 낭보
다음날 일정은 스노클링이어서 월마트에 들렀다. 수영을 배운 적 없지만 왠지 스노클링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을 다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근처 해변을 걸었다. 근데 가만, 영수증에 찍힌 스노클링 세트의 수량이 2개다. 다시 월마트로 갔다. 영수증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하자 매니저는 시시티브이를 돌렸다. 깜박이는 화면 속에 계산대 앞 내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확인을 마친 매니저는 차액을 돌려줬다. 그 돈으로 다시 아이스크림을 샀다.
하나우마 베이에 입장해서 삼십 분 정도의 교육을 받으니 손등에 바다거북 도장이 찍혔다. 귀여운 입장권. 그늘진 곳에 비치타월을 대충 깔아두고 바다로 들어갔다. 요령을 몰라 수경에는 금방 습기가 찼고, 여러 번 물 위로 올라와 재정비를해야 했다. 그런데도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온몸을 감싸는 바닷물의 감촉이 이렇게 좋았었나. 관절과 근육은 긴장이 풀려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이 기분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걸 그땐 몰랐지. 깊은 곳으로, 한 바퀴 크게 돌며 산호초와 물고기들을 눈에 담았다.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잠시 위로 솟구쳤다가 곧장 바닥으로 꺾어내려 가는 사람들의 몸과 따라붙는 궤적이 아름다웠다. 바닥을 찍고 올라올 때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장구와 물살을 가르는 팔의 부지런함 이 즐거웠다. 어느 때보다 가지런했던 심장 박동.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헤엄치고, 힘들면 잠시 모래 위에서 엎드려 졸다가 다시 헤엄쳤다. 며칠 뒤 손 등에 찍힌 바다거북 도장이 옅어질 무렵 잔뜩 타버린 장딴지에 껍질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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