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0. 07:25ㆍ와유와 사유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 제작진
박이웅(감독, 시나리오)
■ 출연진
윤주상(영국), 양희경(판례), 박종환(용수), 카작(영란), 박원상(형락), 유순웅(혁수), 정애화(선숙)
■ 영화 줄거리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탈출을 꿈꾸던 젊은 어부 용수는 늙은 선장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고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영국은 한 달이면 용수의 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될 거라는 말을 믿고 위험한 거짓말에 동참하지만, 용수의 죽음을 믿지 않는 가족들로 인해 계획이 어긋나는데... 살기 위한 거짓말, 절망일까 희망일까.
■ 수상내역 ( 2024 부산국제영화제 )
뉴커런츠상, KB 뉴커런츠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12월 17일 화요일. 복직 관련 서류 제출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마음은 온통 영화 볼 생각으로 가득해 서둘러 리좀으로 향했다.
부국제에서 상을 많이 탔다거나, 오랜만이어서 더욱 반가운 배우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건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알았다. 이런 영화인 줄 모르고 방심하고 있다가 펑펑 울고 대낮부터 눈 빨간 사람 되어 버림... 상영관에 나 혼자여서 다행이었다.
여기서 왜 이런 꼴 당하고
이런 데서 살아
강원도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영국(좌, 윤주상)은 아침마다 자신의 배에 용수(우, 박종환)를 태워 함께 조업을 나선다. 영국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간다. 세파에 너무 시달려서인지 어딘가 초월한 듯한 영국과 달리 용수는 눈앞에 펼쳐진 삶에 너무도 지쳐보인다.
사망신고 하려고
어느 날 용수가 영국에게 자신이 살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걸 들은 영국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그를 돕기로 결심한다.
용수는 늘 이게 사는 거냐고 푸념하던 사람이었다. 죽은 물고기 같던 용수가 유일하게 눈을 반짝이며 살 궁리는 이야기하는 모습에 영국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제가 죽었는데 왜 포기를 안 해요?
용수는 영화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던 인물이다. 저 혼자 쏙 빠져나가서 이 사달을 만들어놓고는 왜 포기를 안 하냐니… 너 같으면 하겠냐 이 철딱서니야ㅜㅜㅜㅠㅠㅜㅠㅜ 그러다가 영화 막바지에 서사가 쌓이고 영국과 판례의 감정들이 터져 나왔을 때 깨달았다.
용수에게는 그게 정말 유일한 희망이었구나, 그 방법 말고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구나. 남은 평생을 자조하며 살지 않고 열심히 궁리한 것을 실천에 옮겼으니 아예 허수아비는 아니구나. 용수는 분명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겼다.
지금 용수 저기 있잖아
아직 살아있다고
판례(양희경)는 불편한 몸으로 폐지를 주으며 살아간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아들과 외국인 며느리, 그리고 이웃인 영국과 함께 저녁 식사도 하며 서로를 챙긴다. 매일 별일 없이 지내다 용수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양희경 배우는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서인지 너무 반가웠다. 윤주상 배우와 더불어 그야말로 영화를 찢어 놓으신 장본인. 발성과 딕션, 표정과 대사 간 여백까지... 한때 즐겨 들었던 음반을 다시 꺼내 듣는 기분.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형락(박원상)은 어촌계 사람들에게 박대란 박대는 다 받으며 등장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영화 속에서 그나마 제정신이 박혀 있던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썩어빠진 지역공동체에 신물이 나 서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인물로 한때는 어촌계를 이끌며 부흥을 꿈꿨지만 화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낙담한다. 그가 덕장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싸우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전 돌아가야 되나요?
영란(카작)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용수가 대책 없이 비겁한 계획에 몸을 내던졌을 때조차 영란은 늘 용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진실되며, 용수에게 위안을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부국제 GV에서 양희경 배우가 이런 말을 한다. 처음 대본을 받고서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담고 있는 영화를 과연 어떻게 찍을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고. 정말 그렇다.
어촌이나 농촌의 노년층, 사별 혹은 이별, 독거노인, 청년들의 결혼 문제, 국제결혼, 보험 사기, 외국인 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현상이 된 요소들이 이 영화에 모두 담겨있다. 그런데 어쩜 그리도 완만하게 풀어냈을까.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직물 같다.
배우님들 연기 좀 살살하실게요
이 영화를 계기로 연극배우 출신 배우들을 향한 편애가 생겼다. 단역 배우들도 어느 한 명 허투루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잔잔한 카메라 움직임이 이렇게 편안했었나? 화려한 촬영 기법, 귀를 때리는 사운드, 박진감 넘치는 화면 전환 없이 이렇게 담백하고 칼칼한 영화라니, 오랜만에 좋은 영화 만났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여러 군상도 함께 다룬다. 숨 쉬듯 무례하고 경우 없는 말을 내뱉는 남매, 사무적으로만 일을 처리하는 공무원, 마음을 내어 돕는 듯하지만 물질적 보상을 노리는 뱃사람들, 따르지 않으면 철저히 소외시키는 지역사회 주민들.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들은 주변에 만연하고 나도 이미 그들 중 하나이니까. 이유를 따져 묻기보다 그 건너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 한결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나에게만 유독 가혹한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엔 이 영화를 떠올리려고 한다. 저이가 반드시 나를 아프게 하려던 것은 아니며 다들 내게 대단히 큰 관심이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고, 사람은 참 여러 질이라는 것도 함께.
그리고 끝내 가슴에 남은 하나.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점점 또렷해지는 기분이다.
영화 포스터
메인 예고편
행복의 나라로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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