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된 필름을 현상하고서 혼맥하는 멀멀한 일상

2024. 11. 28. 20:04사부작 사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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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 최승자

이상하지,살아있다는 건,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_20년 후에, 지芝에게 실컷 자고 일어나 가방을 챙겨 나왔다. 지난밤 느즈막이 먹은 음식이 겨우 소화된 기분이라 아침은 건너뛰었

frame-of-mind.tistory.com

 

이 때 필름을 맡기면서도 되면 좋고, 안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6년 전 일회용 카메라다. 필름에 어떤 상이 맺혀 있을지, 애초에 맺힌 상이라는 게 있는지도 의문이었으니까.

 
 
 

바다 속에서 몇 시간을 수영하며 사진을 찍었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이사다니느라 이리저리 빛도 많이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가게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맡기신 내용 기억하세요?
몇 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물고기 사진이거든요.
그래도 다 뽑아드릴까요?
 

"네"

 
"혹시나 싶어서요,
나중에 막 물고기 사진만 있는데 왜 뽑았냐 하실까봐"
 

"아뇨, 제가ㅋㅋㅋ
진짜 물고기만 찍었어요ㅋㅋㅋ ㅋ"

 

전화하면서 내가 먼저 웃음이 터졌다. 정말로 물고기만 찍었노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웃고, 사장님도 웃고. 여담이지만, 필름을 맡긴 이상 뽑는다는 전제가 따르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나중에 따져묻는 손님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확인 전화를 하신 거겠지? 역시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왕 내 소중한 6년 전 하와이♡ 빛노출은 어쩔 수 없어서 저렇게 파스텔톤 필터를 씌운 것처럼 색이 바랬다. 공단칼라 만세, 사장님 만세 야호! 

 
 
 

공단칼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원이대로 587 정우상가 1층 (용호동 73-62)

place.map.kakao.com

선불금을 제외한 잔액을 지불하고나면 이메일주소로 인화한 사진의 스캔본을 전송해주신다. 역시 손에 쥐어진 사진의 물성은 핸드폰 속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구나, 너무 좋아. (난 아직도 전자책보다 그냥 책이 좋다)

 
 


 
 

이메일이 도착했는지만 확인하고 며칠이 흘렀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을 챙겨 먹었다. 냉동실에 남은 명란으로 만든 명란 두부면 파스타와 명란연근구이. 함께 곁든 차는 얼마 전 선물받은 오설록의 스윗히비스커스. 근데 사실 차보다 맥주가 더 어울리는 맛이었다. 혼맥 진행시켜. 

 
 
 

생전 처음 해보는 스노클링에 허둥지둥하면서도 지나가는 물고기들 찍느라 하루 종일 놀았다. 하나우마베이는 물이 너무 맑아서 온갖 물고기들이 다 보이니까 안 찍을 수가 없어. 맥주 홀짝이며 생물도감과 물고기도감을 뒤졌다. 너네 이름이 뭔지 한 번 보자. 

 
 


 

컨빅트탱 Convict surgeonfish

가장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색이 바래 잘 안보이지만 등부분이 노랗다는 특징이 있다.

 
 

깃대돔 Moorish idol

맞아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그 아이. 얘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꼬리줄나비고기 Sea beauty butterfly fish

와 진짜 라쿤 닮았네. 색이 바랜 사진 속에서도 저 선명한 줄무늬의 존재감, 대단하다 정말.

 
 

대치류(코넷피쉬) Cornetfish

얘를 담은 내가 너무 대견해서 눈물이ㅜㅜㅠㅠㅜㅜ 내가 살면서 얘를 또 언제 만날까? 한 캔 더 마셔.

 
 

노랑줄자돔(옐로우탱)  Yellow tang

 늘 무리를 지어 다니던 애들. 색이 진짜 샛노랗다.

 

상사줄자돔 Sergeant major fish

자세히 보면 저 줄무늬가 일자는 아니고 아래 구분선 모양처럼 삐죽빼죽하다. 

 
 


 
 

즐겁게 다녀왔는데 왜 뭉클하지?


2018년도의 하와이 하나우마 베이는 저런 풍경이었네. 아니 근데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즐겁게 다녀왔는데, 막상 인화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왜 자꾸 뭉클하지? 이렇게 어딘가 뭉개지고 바랜 사진들은 남다른 감성을 전달해 주는 듯하다. 티끌 하나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고화질의 사진하고는 또 달라. 그래서 다시 필름 카메라가 유행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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